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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언어의 땅에서 자라난 음악: 작곡가 홍성지 인터뷰

낯선 언어의 땅에서 자라난 음악: 작곡가 홍성지 인터뷰,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6호』, 예솔, 2020
The Music Raised from a Land of Unfamiliar Language: An interview with the Composer Sungji Hong, 『Korean Contemporary Composers and Compositions 16』, Yesol, 2020
저자 : 모임 ‘오작’ All Editors of Our Journal
발행처 : 예솔 Yesol
2020년 2월 2일 출간  |  ISBN : 9772586536006 |  ISSN : 2586-5366  | 144쪽
「작곡가 홍성지 인터뷰」 글 · 신예슬 
「An interview with the Composer Sungji Hong」 by Yeasul Shin

 
 
낯선 언어의 땅에서 자라난 음악: 작곡가 홍성지 인터뷰

신예슬: 작품 목록을 차근히 둘러보던 중 가장 먼저 제목의 ‘언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어야 워낙 많이들 쓰지만, 이 목록에는 <키클로스(Kiklos)>(2002)ㆍ<그리고 내려오심(Et descendit)>(2015)ㆍ<축복받은 이(Evlogimenos)>(2015)ㆍ<나사로야 일어나라! (Lazare veni foras!)>(2016) 등,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저는 작품 제목이나 편성을 어떤 언어로 표기하느냐는 문제는 그 작품의 음악적 맥락과도 직결된다고 봅니다. 어떤 이유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76쪽)

홍성지: 라틴어는 죽은 언어지만 서양음악사에는 라틴어를 써왔던 오랜 전통이 있죠. ‘기독교 전통’이라는 저와 같은 관심을 지녔던 작곡가들도 있었고요. 그들은 보통 라틴어로 쓰인 성경 구절로 성악곡을 썼어요. 제 곡들의 제목을 보면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단번에 알 수 있어요. <주기도문>(2004)이나 <시므온의 기도>(2016) 같은 곡을 예로 들자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작곡가가 같은 주제로 곡을 써왔고, 저를 포함해서 현재에도 많은 작곡가가 같은 가사와 제목으로 음악을 쓰고 있어요. 제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그 전통을 따르려 합니다. 기악곡의 제목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뜻을 전달하는 거예요. 만약 그리스어로 그 뜻을 표현하려면 한 열 단어가 필요한데 라틴어로는 두 단어로 전달이 된다면 라틴어를 쓰죠. 그리스어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편입니다. (77쪽)

신예슬: 원래 그림이나 이미지에 관심이 많으세요? 텍스트 등 다른 매체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림을, 그중에서도 14~16세기의 성화를 선택하신 것이잖아요. (78쪽)

홍성지: 제가 그림을 좋아하긴 하는데 이미지를 소리로 옮긴다거나 그림 속의 장면을 그대로 스토리텔링 하듯 풀어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건 말도 안 되죠. 맨 처음에는 어떻게 했냐면, 그림의 구조를 분석해 음악의 구조에 사용하거나,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림의 텍스처를 유심히 보는 등 음악의 큰 형태를 잡을 때 그림에서 근거를 찾아보는 식이었어요. 물론 색에서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78쪽)

신예슬: 그렇다면 그런 맥락을 다 제거하고 정말 음악에만 집중했을 때 어떤 부분에 가장 힘을 쏟으세요? 색채일까요? (85쪽)

홍성지: 제가 소리 자체로 어필할 수 있는 색채적인 음악을 좋아하기는 해요. 샤리노ㆍ도나토니ㆍ메시앙ㆍ뒤티외 같은 작곡가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존경합니다. 소리는 색채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작곡할 때 색채를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아니에요. 색채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고, 제가 가장 집중하는 건 사실 구조에요. 곡의 완성도는 구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음악회에 가서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들을 때도 보통 구조를 봐요. 물론 제가 색채감 있는 곡들을 좋아하긴 하고 색채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걸 뒷받침해주는 구조적 틀이 강하지 못하면 제게는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달까요.

제가 가장 아쉽다고 생각하는 곡들이 호흡이 계속 짧게 끊어지는 곡들이에요. 긴 시간을 투쟁해서 그걸 연속적으로,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것이 정말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작게 시작해서 천천히 자라나면 첫 부분이 지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충격적으로 시작하면 긴장감을 지속하기 어렵고, 긴장감을 잃으면 실망하게 되죠. 그래서 각 부분마다 어떻게 하면 너무 많은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참 쓰기 어렵죠. (85쪽)

홍성지: 이 삶이 내 것인 줄 알았지만 내 것이 아니구나, 내 마음대로 계획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이러다 갑자기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이걸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고 결심했죠. 물론 바로 안 나왔지만, 몇 곡을 좀 써보다가 2015년쯤부터 그게 나온 것 같아요. 더 솔직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남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나는 나고, 지금의 나도 나고, 미래의 나도 나고, 과거의 나도 나니까요. 지금 내가 이게 좋으면 이렇게 쓰는 거죠.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그런 일이 아니잖아요. 이번엔 이렇게 했으니까 다음엔 또 이렇게 해보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고. 미련 없고, 후회 없고. (91쪽)

[출처] 16호 [작가와 작품] | 작성자 모임 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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